미리내성지 순례기(김동출 프란치스코)

by 김동출 posted May 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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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한국천주교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미리내 성지 순례』기
김동출 프란치스코

  지난 2016년 5월 14일, <65주년 본당의 날 기념 성지순례>로 이요셉 주임신부님을 비롯하여 170여명의 신도들은 경기도 안성의 아름다운 우리말 ‘은하수’라는 뜻으로 불리는 『미리내성지』를 찾았습니다.
  우리 순례단은 아침 7시에 미사를 드린 후, 8시에 4대의 버스에 분승하여 미리내 성지가 있는 안성을 향하여 출발한지 4시간 여 만에 그 곳에 닿았습니다. 성지에 들어서니 고요하면서도 편안함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곳이 ‘미리내’로 불리게 된 것은 천주교신자들이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와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밤이면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달빛 아래 비치는 냇물과 어우러져 마치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전합니다.
  이곳에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묘소와 그의 어머니 <우르술라>, 김신부에게 사제 서품을 준 조선 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 그리고 김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했던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으며, 103위 순교성인, 성녀들의 이름과 1800년대 조선시대 박해를 받았던 한국 천주교 역사에 대한 자취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단은 순례 일정에 앞서 식당으로 올라가 점심을 먹고 요셉성당에 모여 30여 분 동안 관계자로부터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순교 과정의 전말을 자세하게 설명 듣고 성당 입구 계단에 모여 기념촬영을 한 후 성지의 왼쪽 기슭에 웅장하게 서 있는 「103위 성인 기념 대성전」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기념성당 뒤쪽으로 난 십자가의 길에는 ‘예수가 로마병사에게 붙잡혀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 받고,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기까지의 과정’ 이 담겨져 있는 15점의 청동조각이 있고, 성당에는  김대건 신부의 무덤과 하악골(아래턱뼈)이 모셔져 있고, '김신부의 동상', '성모성당', '겟세마니 동산'  등의 현재의 모습으로 1974년 2대 수원 교구장에 취임한 <김남수 안젤로 주교>가 한국천주교의 발자취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성지로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김 신부 신부님이 미리내에 묻힌 지 50년 후인 1896년 비로소 본당이 설정됐을 때 이곳에는 이미 1천 6백여 명의 신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26세의 나이에 처형당한 김대건 신부는 조정에서 장례마저 치루지 못하게 하여 처형당한 지 40일이 지난 다음에야 이민식 빈체시오가 새남터에서 간신히 시신을 빼내어 남의 눈을 피하며 일주일을 등에 지고 이곳 미리내로 옮겨와 안장할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 순례단은 미리내성지 골짜기에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을 서둘러 피해서 오후 4시경에 현지의 순례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지구상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혹독한 박해와 순교의 시련’ 속에 <한국천주교를 세운 103위 시성>의 자취가 서린 그 곳에는 <시공간을 초월한 절대자 하느님의 위대하신 성령의 힘>이 햇살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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